뼛속까지 녹여버릴 듯한 더위가 몇 걸음 물러선 자리에 높은 가을하늘이 성큼 다가왔다. 파릇하던 나무들도 하나 둘 붉고 노란색으로 단장을 시작하는 계절이 이제는 뚜렷하게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고교시절이었다면 뜨거웠던 인터하이의 반성회를 끝내고 내년을 기약하며 재정비와 트레이닝으로 만전을 기하고 있을 시즌이었다. 대학교 2학년의 가을, 고교시절과는 달리 수많은 여름의 대회들을 끝내고도 11월에 있을 투르 드 오키나와의 준비로 페달을 밟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다. 2학기에 들어서서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 강의와 과제 또한 게을리 하지 않는 대신, 하코네 로드부의 OB로써 그 곳을 찾아가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에 2-3회 이상은 만나던 연인과는 화상통화가 아니고서는 보기 힘들게 되었다. 꼬박 2년. 그리고 그 날로 부터 세번째의 가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동안 아주 많은것들이 바뀌어 버렸다. 많은것들이 바뀌어버렸고, 그리고 여전히 바뀌고 있으며 흘러가고 있는 가을날이었다.
"네, 벌써 그렇게 됐어요. 한 여섯시~일곱시만 되어도 한밤중마냥 깜깜해지는게 아, 이제 여름이 다 갔구나- 싶다니까요."
어린 시절, 쌍둥이 여동생과 함께 우연히 보았던 로드바이크에 고스란히 마음을 빼앗긴 후 수년. 여전히 제 마음속에는 그것이 가장 소중한 꿈이고 목표로 확고부동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고교시절 인터하이 3연패의 상처를 딛고 대학 로드부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각종 대회에서 착실하게 실적을 올리며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몇번인가 프로 로드팀의 스카우트도 받았었다. 학부 내에서는 교수님들에게 예쁨받는 착실한 학생이었고, 고교시절 후배들과도 여전히 교류하며 친목을 돈독히 하고 있었다. 타학교의 라이벌이었던 친우들과의 연락도 여전했다. 이나데라 마사토의 대학생활은 모든것이 완벽했다. 모든것이, 아니. 단 한가지를 뺀 모든 것이.
그가 슈쨩의 제의를 받아 함께 해외로 나가기 직전 커플폰으로 맞췄던 스마트폰 너머로 언제고 들어도 부족한 나즉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목소리이건만 바로 옆에서 속삭여 주는 것 처럼 늘 자신을 간질거리게 만들어주는 목소리. 주말이라고 늦잠이라도 잤는지 아직 잠기운이 묻어나는게 귀여워 절로 입가에 잔 웃음이 맺히고 마는 것을 감출 생각따윈 하지 않았다. 8시간의 시차만큼 몸은 멀어졌지만, 멀어진 시간도 퍽 길어져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통 마음이 멀어지리라고는 제 심장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래도 역시.
아, 아쉽다.
내심,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목소리가 입 밖에까지 밀려 튀어나갈 것 만 같아 전화 너머로 들리지 않게 침을 삼키며 내리 눌렀다. 역시 그와 몸이 멀다는 것은, 저보다 약간 더 큰 손을 잡을 수 없고, 부드럽게 휘어지는 눈매를 마주 볼 수 없고, 따뜻한 입술이 마주 닿을 수 없고, 그 너른 등을 쓰다듬을 수 없으며 맨 살의 온기를 오롯이 나눌 수 없음이어서, 그런 많은 것들을 참아야 한 다는 것은 더없이, 너무나도 큰 아쉬움으로 빚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역시 선뜻, 먼저 해외에 나가서 고생하고 있는 그에게 그런 투정을 할 수는 없어 꾹 삼키곤 했었다. 고작 일년이 채 안 되었는데도, 이렇게나 아쉬워지고 마는 것은 그만큼 식지않는 깊은 애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겠지. 지난 여름 내내 몇번이나 삼켜내고 참아내던 아쉬움, 달리말하면 그리움이었던 그 감정을 이번엔 아주 슬쩍, 조심스레 입 밖으로 내어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말로만으로 끝나게 될 애닳음이 아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조금 이르게 조기졸업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물론 스카우트가 들어온 것도 있고-"
여태토록 조곤조곤히 일상의 이야기를 하던 것 처럼, 평이하고 단조로운 어투로 다소 놀랄만한 뉴스를 읊어내는 것에 오히려 전화 너머 상대의 목소리가 더 놀란듯이 들려왔다. 소리죽인 웃음이 새어나와, 아마 지금 집 앞에서 쌍둥이 동생이라도 마주치면 퍽 바보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놀림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하고 올해, 대회에서 쌓아둔 실적이랑 매 학기 수석 장학금을 놓치지 않을 정도의 학생이란 것에서 가산점을 받아 남은 2년치의 학점을 채우지 않아도 괜찮을거란 이야기를 교수님께 들었어요. 그래서 아마, 11월에 있을 투르 드 오키나와를 끝내고 나면."
이제 겨우 가을이 시작했을 뿐인데, 벌써 여름을 저만치 미리 세워둔 봄하늘이 눈 앞에 어른거리는 것 만 같았다. 서늘한 공기의 어둑한 밤하늘이 2년전의 것과 꼭 닮아 있어 별빛 아롱이는 그 맑은 하늘같은 미소를 만면에 머금었다.
"넘어가게 될 것 같아요. 영국으로. 올 연말에는."
나의 꿈을 향해서, 그리고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함께 하지 못했던 지난 새해를, 이번에는 저 바다 너머 다른나라에서 함께 할 수 있으리라. 그러니 어서, 그 입술의 열기를, 손끝의 뜨거움을 더 이상 아쉬워하지 않아도 될 겨울이 어서 제게로 달려 오기를. 겨울이 제게 달려오는 만큼, 저는 그에게로 달려갈 수 있을테니까.
고즈넉한 가을밤 하늘 아래, 같은 하늘 아래 저 바다너머로 이르게도 겨울을 기약하는 사랑을 속삭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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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미포 1927
조기졸업같은건 그냥 픽션입니다 적당히 그러려니하고 넘겨주세요...<
잇마사 800일이래 세상 잇마사 사랑해 영원히 러브해...ㅠㅠㅠㅠㅠㅠㅠ앤오님 제가 매니매니 사랑하ㅏ는거 아시죠
정말 여태토록 잇마사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3주년 4주년을 넘어 천년만년 사랑하자 잇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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