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물게꿈을 꿨다. 중학교 3학년 겨울, 전중 3연패 직후에만 꾼 뒤 그 이후엔 꾼 적 없었던 꿈을 꿨다. 그것도, 그때와 똑같이 '그'가 나오는 꿈을 꿨다. 조금 다른 게 있었다면, 굉장히 흐릿해서 표정을 알아보지 못했던 그때와는 달리 이번엔 너무나도 선명하게 얼굴이 보였다는 것이었다. 울기라도 한건지 눈가가 발개진 채로 저를 향해 웃어주는, 굉장히 아릿하고 가슴 아픈 표정을 짓고있었다. 마주 보고 있는 자신에게까지 눈물을 전염시킬 것만 같은 꿈 속의 그의 표정은 묘하리만치 선명하게 뇌리에 박혀서, 새삼 10여 년 만에 그의 사진을 다시 찾아보게끔 만들었다. 10여 년. 그의 얼굴을 본지 어느새 그만큼이나 길고도 짧은 시간이 지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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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이전의 물건 몇 가지를 간추려놓았던 상자는 벽장 가장 안쪽에 꼭꼭 숨어서 잠을 자고 있었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들고 나오긴 했지만 보고 있으면 그저 가슴 아프고 죄책감뿐인 추억이라 가장 안쪽에 밀어 넣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얇게 층을 이룬 먼지를 창밖에서 조심스레 털어내고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상자 한 귀퉁이에 중학생 때의 조금 둥글한 글씨체로 써 붙여놓은 메모지를 가만히 바라보며 손끝으로 훑어보았다. 「しょうがくせい。」 초등학생. 그 어린 시절의 작은 추억들. 그다지 담을 게 없었던 기억만큼 상자의 크기는 작은 편이었다. 공 하나도 들어갈까 말까 한 상자 속에는 바람이 빠져 반듯하게 접혀있는 아이들 용의 작은 농구공과 차곡차곡 쌓여있는 편지들과 그 사이로 꼭꼭 숨겨진 사진 한 장이 있었다. 10여 년하고도 조금 더 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다지 변질하지 않은 사진 속에는 제 머리통만 한 농구공을 끌어안고 카메라를 멀뚱히 바라보는 자신과 햇살을 닮은 맑은 미소를 얼굴 한가득 띠고서 어린 자신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어린 그가 서 있었다. 그리고 분명, 파란 나무들을 배경으로 반소매 티를 입고 있는 사진 속의 시간은 피부가 가무잡잡하게 그을릴 것만 같은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그랬다. 그와 저는 여름에 처음 만났었고, 몇 년 뒤 여름에 얼굴조차 마주하지 못한 채 헤어졌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와는 언제나 여름에 얽혀있었다. 새삼스레 꿈을 꾸고 그의 흔적을 더듬어 보고 있는 지금의 계절 또한, 초여름의 한 자락 어딘가 즈음이었다. 언제나, 언제나 그와의 기억은 후덥지근한 여름의 프레임 속에서만 맞닿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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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기쿠로 패러랠북. 원작과 달리 전중이후 오기쿠로와 전혀 만나지못하고 성인이 된 쿠로코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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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박자박.
작지만 강단 있고 절도 있는 군화의 발소리가 고요한 복도 위를 잔잔하게 뒤덮었다.
뚜벅뚜벅.
큰 폭의 자로 잰 듯 칼 같은 발소리가 뒤이어 작은 발소리와 뒤섞였다.
저벅저벅.
첫 번째 발소리보단 크고, 두 번째 발소리보단 작지만 유하고 부드러운, 그리고 느긋한 발소리가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섰다.
"오, 텟짱! 신짱! 내가 딱 맞췄나보네~"
하이텐션의 목소리가 로우텐션의 두 사람을 가로질러갔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 미도리마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아 괜스레 안경을 고쳐 쓰며 미간을 찡그렸고, 쿠로코는 그런 그를 말없이 올려다보는 듯 했다. 미도리마는 싱글벙글한 타카오를 영 맘에 들지 않는 시선으로 보고 있었기에 어렴풋 느껴지는 것으로 그럴 거라 생각했다. 쿠로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시선과 함께 자신의 위치를 타카오의 옆자리로 옮기기만 했다. 그 군더더기 없고 조용한 움직임에 미도리마는 일순간 자신이 한 생각이 착각이었던 건가, 하는 미묘한 기분이 들어 괜한 안경만 들썩였다.
"실례했습니다. 그만 들어가서 쉬세요, 미도리마군."
"그래그래, 오늘 엄청나게 해버렸다며? 푹 쉬라고 신짱~"
입이 썼다. 실례를 했다고? 사실 실례를 더 범한 건 미도리마 자신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저 가지런한 입매는 자신이 실례를 했다고 하고 있었다. 그건 미도리마가 한 짓이 그에게 어떠한 자극도, 타격도 없었다는 의미이며 그것을 단 한 톨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단 소리였다. 지독한 무관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깊은 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검은 물에 어떠한 대답도 내놓지 못하는 사이, 쿠로코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저를 배웅해주는 타카오의 행동이 거슬렸다. 지독하리만치 불쾌하고도 불쾌해서, 마구잡이로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애써 다잡으며 일언반구의 대답 없이 등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