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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

2014. 11. 29. 23:21 from Ani & Weptoon/Pedal
*토도 드림물
*오리주(오너캐)주의
*빨간구두 전력



대학교 3학년의 어느 늦가을 저녁.

"언니, 옆집에 누가 이사왔다는데?"

엉, 그래. 동생이 새로운 소식이라며 들고온 이야기를 난 무척이나 시큰둥하게 넘겨들었었다. 최근 알바를 시작해서 피곤하기도 했고, 이사라고 한들 옛날처럼 떡을 돌리고 인사나누는 모습은 이젠 거희 찾아보기 힘든 상태였으니 옆집에 새로 이사왔다는 사람도 지나가다 보는정도가 전부겠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


점심즈음, 느즈막하게 알바출근을 하려고 집을 나서는 길에 문득 옆집의 대문이 시선에 걸렸다. 어제 이사한 것 치곤 깨끗하네, 무감각한 감상만을 속으로 읊고 그냥 지나쳤다. 하루가 흐르고 늦은 저녁 알바가 끝나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도 비슷한 감상을 짧게 읇었다. 누가 이사온걸까, 짧은 호기심도 일어났었지만 금방 신경을 꺼 버렸었다. 그랬었는데.


*


"오, 안녕? 안그래도 떡을 돌릴까 하던 참이었는데 말야. 아, 이몸은 토도, 토도 진파치! 하늘은 내게 세가지를 내려주셨지, 미모와-"

"...언변과 클라임실력..."

"어...왓하하! 역시 이 몸의 유명세란! 이사오는 곳의 옆집에까지 내 소녀팬이 있었던건가!"

별 생각없이 나간 베란다에서 마주친 옆집사람은 나를 얼빠지게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차고넘치는 인물이었다. 몇년 전 고등학생때 친구와 함께 하코네에서 열렸던 인터하이 1일차를 구경하러 갔을때 본 산악상의 주인공이자 당시 하코네 주변에서는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인기인이었던 남자. 현 대학내에 그도 다니고있단 소문을 들었지만 과가 생판달라 스칠일 조차 없었던 캠퍼스 제일의 미남이라 불리는 토도 진파치란 존재가 고작 난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집 베란다에 서 있었으니 내가 넋을 놓지 않을 수 있을리 없었다. 실제 그의 클라임장면을 봤던건 단 한번뿐이었지만 그 한번만으로 충분히 시선을 잡아당기다 못해 압도적이고 우아한 움직임에 빨려들다시피 했었다. 이후 여러 방법을 통해 그에 대한 간단한 정보와 시합 영상을 여럿 보며 생전 아이돌 앓아본 적 없던 내가 아이돌 앓듯 그의 소녀팬이 되 버리기까지엔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었다. 그랬었는데, 그 때 멀찍이서나마 보았었던 그 얼굴이 코앞에 있다니. 거기다가 옆집. 아파트 구조상으로 분명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옆방. 굳이 비유를 하자면 모니터 속 최애캐가 불쑥 튀어나온 느낌이 이런걸까. 얼빠진 얼굴로 멀뚱멀뚱하게 그를 쳐다보다 영 들지않는 현실감에 내 볼을 잡아당기는 바보짓까지 감행하고 말았다.

"ㅇ,아..."

"음? 굳이 그러지 않아도 지금 네 눈 앞에 있는건 진짜 토도 진파치다! 꿈같은게 아니니 맘껏 기뻐하도록! 자 봐라, 이 몸이 여기서 살게 된 것을 환영해주듯 야경이 저토록 아름답지 않은가!"

기억속의 그의 주행과는 정 반대로 무척이나 장황하고도 거창한 말과 요란스런 목소리였지만 그럼에도 정말로 그 날의 야경은-.


*


"역시 추워- 으으."

"그럼 들어가자니까, 쇼쨩? 추운거 싫다면서 오늘따라 왜 고집을 부릴까...감기걸릴라."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갈래."

담요를 망토처럼 두르고 나온 베란다는 지금이 초겨울이란걸 과시하듯 차가운 밤공기가 잔뜩 내려앉이있었다. 추위를 심각할정도로 타는지라 따뜻한 담요를 덥고도 목을 잔뜩 움츠리며 춥다 중얼이는 내 뒤편으로 어느새 베란다를 넘어온 그의 불만스럽고도 걱정스런 목소리에 작게 웃어보였다. 그럼에도 표정이 영 풀리지 않던 그가 뒤에서 품안 가득 나를 와락하는 행동과 그 온기에 절로 기분좋은 미소가 새어나왔다. 따스하고도 상냥한 그의 온기가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서.

"오늘, 야경이 참 예쁘구나 싶어서 조금 구경하고싶었어."

폭-하니 그에게 기대 난간아래의 야경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중얼이며 과연 그가 기억할까, 궁금해졌다.

"그리고 아까 집에 오면서 보니까, 달이 굉장히 예쁘게 떴길래."

그렇지만 왠지, 기억하지 못해도 딱히 상관없단 생각이 들었다.

"달이 참 아름답다. 토도."

몸을 되돌려 그와 마주본채로 까치발을 들어 짧게 코 끝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이건 기억해주고 있으면 좋을텐데, 내 고백. 수줍었던 그 날.

마냥 기분이 좋아서 헤실헤실 웃고 있자니 그의 입술이 내 입술위로 내려앉았다. 그 때처럼 날 바스라트릴 것 처럼 꽉 끌어안는 손길이 더없이 기뻤다. 귓가에 속삭이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소름끼치게 섹시하게 들려왔다.

"쇼짱이 제일 아름다워-"

초겨울, 늦은 밤의 날씨임에도 얼굴이 한여름 뙤약 볕 밑에 있던것마냥 잔뜩 뜨거워진 기분에 나는 언제나처럼 그의 품에 얼굴을 꼭꼭 숨기듯 파묻었다.

"봐봐, 쇼쨩과 나를 축복해주듯 야경이 저토록 아름다운 것을!"

머리위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에 심장이 간질간질해져서 실없는 웃음이 흘러넘쳤다. 너도, 너 역시도 또렷하게 기억해주고 있었구나. 쭉 이곳에서 살던 내 눈에는 조금도 반짝이거나 예쁘게 보이지 않았었던 베란다 너머의 야경이 유난히도 아름다웠던 그 날을.

그 가을날의 무척이나 화려하고도 눈부셨던 야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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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쇼우소예 :


 두 형제에게 있어서 작은 소년은, 오로지 그들만이 만지고 끌어안아 줄 수 있는 인형이었다. 분명 살아 숨쉬고 심장이 뛰는 사람이었지만 두 형제는 소년을 인형마냥 소유하며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후작家의 적통한 후계자지만 노네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단 한번도 대외적으로 내보여진 적 없는 형제에게 있어서 소년은, 그 둘에게 주어진 유일한 말벗이자 전용 시종이며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소유물이었기 때문에 그러했으며 그 소년도 자신들과 '똑같은' 노네임이었기에 더더욱 강한 소유욕을 보이게 되는 유일한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


10여년의 시간이 흐를동안 작은 소년은 저보다 두살 위인 형과 한살 아래인 동생 사이에 끼여 매일 형제의 방에서 형제와 함께 잠을 자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이 공부를하고, 같이 놀고. 언제나 모든것을 함께해왔다. 얼핏 보면 삼형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붙어다녔고 그것은 주변에서 보기에도 언제까지고 변함이 없을 것만 같았었다. 그랬었었다.


*


"…ㅎ,하야토형, 유우,토군,나…이름,이…"


 형인 하야토의 성인식이 얼마 남지 않았던 초봄. 영원할 것 같았던 세 사람사이에 자그마한 균열이 생겼다. 작은 소년, 오노다 사카미치가 태어난지 16년만에 갑자기 나타난 네임은 세 사람에게  놀라움이었고, 특히 오노다에게는 반쯤 두렵기까지 한 것이었으며, 두 형제에게는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남자아이치고 크지 않은 손, 왼손 검지손가락 위에 가지런하게 새겨진 글씨 - Shinkai -. 신카이. 두 형제의 집안의 이름, 두 형제의 성. 신카이 후작가의 누군가를 가르키는 오노다의 네임. 그것은 신카이가문의 그 누구라도 이름의 주인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으나, 그 때까지 신카이 후작가의 핏줄 중에서 오노다의 네임이 나타난 사람은 전혀 없었고, 네임의 주인을 찾지 못한 사람도 전혀 없었으며 하다못해 노네임인 사람도 자신들 형제뿐에 없었다. 다시말하자면 오노다의 손가락에 나타난 네임은, 두 형제중 누군가를 뜻하는 네임임에 틀림이 없단 소리이기도 했다. 보통은 풀네임, 혹은 성을 제외한 이름만이 나타나기 마련이건만 이렇게 성만 나타난 건 참으로 특이한케이스-10여년이 지나 뒤늦게 발현한 자체가 이미 특이한 케이스지만-여서, 그저 형제의 말벗이자 놀이상대였고 일개 시종이였던 오노다 사카미치가 후작가 안의 유명인사가 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


 네임의 발현 이후 형제는 한시도 오노다를 곁에서 떼어놓지 않게되었다. 겉치례적인 이유는, 후작가 적통의 네임을 가진 자를 없애면 안그래도 위태하던 하야토나 유우토의 입지가 더 흔들려서 그 자리를 빼앗을 수 있을거란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의 위험에서 지켜내기 위해서였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조금 더 자신의 것이란 소유욕이 강해진 탓도 있었다. 하야토인지, 유우토인지는 알 수 없으나 둘 중 누군가의 것임은 확실한 네임이 나타났으니, 자연히 더 남에게 보이려 하지 않게 됐음이라. 


"신기하다. 예뻐요, 사카미치형."

"응, 예쁘다, 사카미치."


 번갈아서 오노다의 손을 맞잡는 형제의 눈이 이채로운 빛을 띠었다. 성만 나타난 탓인지 하야토와의 접촉에도, 유우토와의 접촉에도 검지손가락의 네임은 새벽의 하늘마냥 고운 푸른빛을 띄는것이 아름다워 두 사람은 몇번이고 손을 맞 잡고, 손가락을 매만지고, 손 끝에 입을 맞추었다. 방 안에서 거희 나가지 못하게 된 오노다가 책을 읽거나 창 밖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어느샌가 둘 중 하나가 슬그머니 다가와 뒤에서 끌어안곤 했다. 그 때마다 일렁이는 푸른빛에 매료되기라도 한 듯, 두 사람의 시선은 언제까지고 오노다의 손가락에서 떠날 줄 몰라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불안함에 하야토는 유우토를, 유우토는 하야토를 경계했다. 어느순간엔가 나타는 뒷 이름이 자신의 것일지, 혹은 형제의 것일지 모르는 노릇이었기에. 단 한순간으로 오노다 사카미치는, 오로지 자신만의 소유가 아니게될 수 있기 때문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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